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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츠키시마, 사색에 빠진 얼굴이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 말없이 웃었다. 역시 스가 선배의 눈은 정확했고 도저히 그에겐 무언가를 숨길 수 없었다. 나는 상념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라고 말하기엔 부끄러웠다. 상념의 원인은 그였으니까. 오늘은 스가 선배의 졸업식을 보고나서라 그런가, 처음 입부했던 순간부터 현재까지가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갔다. 선배를 기다리던 동안 식어버린 커피에 설탕을 뜯어 붓고 천천히 저었다. 한 모금 마시자 입 안에 서걱거림이 느껴졌다. 아직 커피가 식은 바람에 설탕이 잘 녹지 못한 탓이었다.

 

  저 환한 사람이랑 어쩌다 내가 친해지게 되었을까. 스가 선배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사교적인 사람이었다. 처음 만나는 우리들에게 서슴없이 말을 걸어주었다. 심지어는 냉담한 표정인 나에게까지도. 아무리 내가 싫은 표정을 지어도 그는 신경 쓰지 않았고, 아무리 귀찮다는 듯 반응을 해도 계속 말을 걸어주었다.

  처음 친해지게 된 계기는 사소한 것이었다. 나는 어느 주말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잘 풀리지 않았다. 머리가 지끈거려서 근처 카페에 들어가 딸기쇼트케이크를 시켜놓고 앉았다. 평소엔 혼자 딸기케이크 같은 걸 먹기가 민망해서 케이크를 포장해들고 집으로 갔는데 왜 그날따라 카페에 앉아서 먹고 싶었는지.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곡이 내가 좋아하던 곡이어서 그랬을까. 아무튼 나는 카페 한 구석에 앉아서 케이크를 먹으며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케이크 맨 위 딸기는 가장 마지막에 먹기 위해 옆에 덜어놓고.

  “?! 츠키시마!”

  절반쯤 먹었을까. 그때 스가 선배가 그 카페로 들어왔다. 선배는 들어와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나는 선배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얼굴을 가리려 했으나 한 발 늦고 말았다. 선배는 반갑다는 듯 걸어와서 자연스럽게 내 앞에 앉았다.

  “딸기 케이크 좋아해? 맛있겠다. 나 한 입 먹어도 될까?”

  “, . . 드세요.”

  선배는 십스틱으로 아주 조금의 케이크를 떠먹고서는 빨대를 내려놓았다.

  “더 드셔도 되는데.”

  “아냐 이거면 돼. 근데 이 딸기는 뭐야? 아껴놓은 거?”

  “, , .”

  나는 민망해져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나타난 스가 선배에 놀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 큰 남자애 혼자 딸기쇼트케이크를 먹고 있었다는 사실도, 딸기를 아껴먹으려고 골라낸 상황도. 이제 곧 스가 선배도 여자애처럼 뭐하는 거냐며 비웃으려나하고 생각했다. 선배는 상냥한 면도 있지만 장난치는 걸 좋아하니까. 그러나 의외로 스가 선배는 아무렇지 않게 나도 그렇다고 말하며 웃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마지막에 먹으면 입 안에 그 맛이 오래 맴돌아서 좋지 않아? 라며 선배는 아껴먹는 것에 대한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나는 한참 듣고만 있었고 선배 혼자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대화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말을 이어가는 선배가 신기했다. 이 사람의 친화력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하는 생각에 잠시 빠졌다가 선배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 츠키시마. 어때?”

  “? , 잠시 딴 생각을 해서.”

  “? 이 하늘같은 선배님이 말씀하시는데 감히 딴 생각을 했단 말이야? 원래는 헤드락인데 한 번만 봐주지!”

  “

  “, 반응 좀 해주라. 재미없게. 아무튼 내 동생이 케이크가 맛있다고 한 카페가 있는데 오늘 한 입 얻어먹었으니까 다음에 거기서 케이크 사주겠다고.”

  “안 그러셔도 되는데. 어차피 조금밖에 안 드셨잖아요.”

  “, 다음 주 주말 어때? 약속 있어?”

  “아니, 약속은 없는데.”

  “좋아! 그럼 가기로 한 거다? 난 이제 가볼게. 안녕. 내일 보자.”

  그렇게 카페 만남은 한 번이 두 번이 되었고, 두 번이 세 번이 되면서 점점 선배와 친해졌다. 선배한테 살갑게 굴기는 어려웠지만 처음 카페에서 만났을 땐 듣기만 하던 내가 점점 나의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그러기를 두어 달 나는 일요일이면 스가 선배를 우연히 만났던 그 카페에 나가 딸기쇼트케이크 2개를 시켜놓고 앉아있기 시작했다. 아주 느린 속도로 케이크를 먹으며 공부를 하다 보면 스가 선배는 환하게 웃으면서 자신을 위한 아메리카노와 나를 위한 시럽을 넣은 라떼를 사들고 내 앞에 앉았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러다 하루는 주말에 갑자기 감기에 걸렸다. 우리는 만나자고 한 적 없이 항상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나는 선배에게 연락을 해야 할 의무감에 휩싸였다.

  [선배 저 오늘은 아파요.]

  메일을 보내놓고 하필 일요일에 찾아온 감기를 원망하다 잠이 들었다. 이렇게 메일을 보내는 나를 선배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지 약간의 걱정과 함께. 다행히 선배는 약속하지도 않고선 약속을 깨는 듯 메일을 보낸 나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 가득한 메일이 되돌아왔을 뿐이었다. 다음날 부 활동에서 선배는 따뜻한 차를 보온병에 담아와 건네주었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는 제대로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원망스러웠던 감기지만 지금은 그 때 감기에 걸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선배가 졸업하고 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선배는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기로 했다. 앞으로는 선배랑 부 활동을 할 수도 없고 주말마다 카페에서 만날 수도 없다. 선배는 더욱 바빠지겠지. 만날 수 있기는 하려나. 선배랑 나는 사실 아무 사이도 아니고 그냥 연락을 하고 우연히 만나는 사이인데, 만나기 힘들겠지. 그리고 선배는 인기도 많으니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더 많아질 테고. 말수 없고 다정하지도 못한 나는 선배와 어울리지도 않을 거야.

  “츠키시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냥. 조금 섭섭해서.”

  “뭐가 섭섭한데?”

  “앞으로 못 만날 거라 생각해서요.”

  “못 만나다니? 앞으로 나 안 만날 생각이었어? 이거 좀 섭섭해지려고 하는데.”

  “그렇지만 선배도 바빠질 테고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요.”

  “아무 사이도 아닌 건 아니잖아.”

  “제 말은요 저흰 사귀는 사이가 아니잖아요.”

  “

  “갑작스러울지 모르지만 고백하고 싶어요. 선배가 딸기쇼트케이크를 같이 먹을 사람은 저뿐이었으면 좋겠어요.”

  “, 다행이다. 아껴놓은 보람이 있었네.”

  “?”

  “좋다는 말이야.”

  선배는 알 수 없는 말을 꺼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선배가 내 고백을 받아주었다는 것, 나에게 그 외에는 중요한 것이 없었다.

  그동안 계속 젓기만 했던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마셨다. 뜨거운 물이 아니더라도 설탕은 녹았다. 뜨거운 물이었으면 조금 더 일찍 녹았겠지만 오랜 시간 공들여 저은 설탕은 찬 물에서도 녹았다. 우리가 함께 한 긴 시간은 그런 과정이었다.

  “그거 알아? 사실 나는 딸기쇼트케이크 안 좋아했어. 너무 달고. 느끼해.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딸기쇼트케이크가 좋아지더라. 혼자 찾아먹기도 해. 이젠 입 안에 감도는 단 맛도 싫지 않고 느끼한 줄도 모르겠어. 사실 딸기쇼트케이크가 좋아진 것이 아니라 너와 함께하는 시간이 좋아지고 딸기쇼트케이크를 먹으면서 네가 떠오르는 게 즐거운 거야.”

  “그랬나요?”

  “. 이제 내가 딸기쇼트케이크에 빠지게 만들었으니까 책임져.”

  “제가 왜요? 좋아한 건 스가 선배면서. 전 강요는 안 했다구요~”

  “어쭈, 이게 입만 다시 살아가지고.”

  선배는 재수없다며 나에게 헤드락을 걸었다. 평소보다 더 힘이 실려서 몸은 괴롭다고 느꼈지만 마음엔 마치 선배에게 안긴 것 같은 포근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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