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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에 고민이 이어졌지만 아카아시 케이지가 할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붓을 드는 것이었다. 아카아시는 붓을 들어 자신의 마음을 종이 위에 시의 형태로 아로새겼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시는 한 구절이 두 구절이 되고 두 구절이 두 편이 되고 두 편이 셀 수 없이 많은 편으로 늘어났다.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아카아시는 단 한 번도 시를 써본 적이 없었다. 붓을 든다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오게 될 자신의 마음이 무서웠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수천편의 시를 쓰고 지웠지만 그것을 어떤 형태로 남기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붓을 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전부 흘려보내자. 전부 흘려보내고 마음을 비워내자. 밤을 새워 수십 편의 시를 써낸 아카아시는 마지막으로 한 장만 더 쓰기로 결심을 하고 종이를 꺼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점차 흐려지던 머릿속도 다시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 가지런히 적어내린 후 아카아시는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빠진 듯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별안간 번쩍 일어나선 마당 한 구석으로 향했다. 그런 그의 손에는 자신의 시가 담긴 수많은 종이 뭉치와 불이 켜진 초가 들려있었다. 갑자기 마당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행랑아범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도련님, 잠자리가 불편하신가요?”
“아니다. 신경 쓰지 말고 들어가서 쉬거라.”
“손에 들린 초는 무엇입니까? 혹시 그 종이를 태울 작정이신가요? 그렇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이리 주십시오.”
“이건 내가 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구나.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들어가 있거라.”
단호한 아카아시의 말에 결국 행랑아범은 불안한 표정을 하면서도 다시 행랑채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확인한 아카아시는 다시 구석에 앉아 종이를 하나하나 태우기 시작했다. 화르륵 이는 불길에 타는 것이 종이인지 제 마음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하나씩 태우고 나니 마지막 한 장만이 남아있었다. 마지막으로 쓴 시였다. 그 종이를 들어 불에 가져가던 아카아시는 곧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울 것만 같은 자신의 얼굴을 한 손으로 쓸어내렸다. 차마 이것만은 태우지 못할 것 같았다. 아직은, 아직은 아니다. 조금 더 정리가 되거든 이것은 그 때 태우도록 하자. 그리 속으로 위안한 아카아시는 결국 그 종이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서안 깊숙이 넣어두었다. 그렇게 차마 태울 수 없던 자신의 마음을 조금 더 깊이 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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